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출간 당시 한국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작품으로, 스릴러와 문학적 깊이를 동시에 담아낸 독특한 소설입니다. 2024년 현재 다시 읽어보면, 치매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의 기억과 정체성, 그리고 범죄 심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며 여전히 큰 울림을 줍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작품의 줄거리와 주제, 서술 기법과 문학적 의미, 그리고 독자와 평단의 반응을 중심으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줄거리와 주제 의식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은퇴한 연쇄살인범이 치매에 걸린 후, 자신의 과거 기억이 서서히 흐려지는 상황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주인공은 한때 연쇄살인을 저질렀던 인물이지만 현재는 평범한 노인으로 살아가며, 기억의 공백 때문에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기 힘들어합니다. 이때 그의 딸이 새로운 연쇄살인범의 타깃이 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되면서 이야기는 긴장감 있게 흘러갑니다.
주제 의식은 ‘기억과 정체성’에 있습니다. 치매는 단순히 병리학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요소로, 과거의 자신을 잃어가며 정체성 또한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주인공은 자신이 범죄자였다는 사실을 잊어가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살인을 막기 위해 움직이는데, 이 과정에서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을 독자에게 던져줍니다.
김영하는 이 작품에서 스릴러적 긴장감과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동시에 제시합니다. 따라서 독자는 단순히 범죄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억이 사라진다면 누구로 남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서술 기법과 문학적 장치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1인칭 시점의 불완전한 서술입니다. 주인공은 치매를 앓고 있기 때문에 사건의 진행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기억의 단절과 왜곡 속에서 서술이 이어집니다. 독자는 이야기의 신뢰성을 의심하게 되고, 실제로 일어난 일과 주인공의 망상이 섞여 있는 서술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추론해야 합니다. 이는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장치입니다.
김영하는 단문과 건조한 문체를 사용해 불안감을 증폭시키며, 기억이 흩어지는 순간마다 의도적으로 반복이나 생략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동일한 사건을 여러 번 다른 방식으로 회상하거나, 중요한 순간에 기억이 끊기는 장면은 독자로 하여금 서술의 공백을 채우게 만듭니다.
또한 소설 속에서 ‘살인자’라는 정체성과 ‘치매 환자’라는 상태는 서로 대비되며, 인간 내면의 어두움과 연약함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과거에는 강력한 가해자였지만 현재는 자신의 기억조차 지키지 못하는 무력한 노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대비는 독자에게 강렬한 아이러니를 전달하며, 범죄 스릴러를 넘어선 문학적 깊이를 만들어냅니다.
독자 반응과 한국 문학의 의미
출간 당시 이 소설은 스릴러와 순수문학의 경계를 허문 작품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독자들은 “한 번 잡으면 놓기 힘든 몰입감”과 “읽고 나서도 오래 남는 질문”을 동시에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특히 치매라는 소재를 범죄와 결합한 시도는 한국 문학에서 보기 드문 방식으로,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2017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더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원작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더 심리적이고 문학적인 면에 집중하고 있어, 두 매체를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있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원작에서 느낀 압도적인 긴장감과 주제 의식이 영화와는 또 다른 깊이를 준다고 평가합니다.
한국 문학에서 살인자의 기억법은 ‘장르 문학과 순수 문학의 경계를 허문 작품’이라는 의의를 갖습니다. 이전까지 스릴러는 대중문학으로만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김영하는 이 작품을 통해 장르적 재미와 문학적 성찰을 동시에 담아낼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2024년 현재 다시 읽어도 여전히 신선하고, 한국 소설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스릴러적 재미와 문학적 깊이를 모두 갖춘 드문 작품입니다. 치매라는 소재를 통해 기억과 정체성,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를 탐구하며 독자에게 강렬한 여운을 남깁니다. 2024년 지금 다시 읽어보면,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여전히 살아 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회자될 한국 문학의 중요한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